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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형과 친해지게 된 것은 현 보수야당의 한 의원 덕분이다.


하차 작업 중 형이 내게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언제냐고 물었다.

전문직역 자격증과 변호사, 사시 폐지와 로스쿨 제도 도입 등 꽤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 와중에 난 로스쿨 도입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여전히 서민들에게 전문적인 법률 서비스는 

그림의 떡이다, 너부 비싸다, 변호사 수 더 많아져도 된다라는 취지로 이렇게 물었다.


"형, 주변에 아는 변호사 있어요?"

"어, 있어"

"에? 정,정말요?"


당황했다.

없을 줄 알았다.

없어야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누구요?"

"OOO"


"에?!, ㅁㅁㅁㅁ당 OOO이요?"

"응"

"형이 그 양반은 어떻게 알아요?"

"우리 형, 친구야"

"아, 정말요?"

"우리 아버지 지인이신데"

(정말임. 대학동문 & 고시반)

"아, 정말 그러냐?"


M형은 전북 군산 회현면 학당리에서 태어났다.

옛부터 선비들이 모여 살아 학당이 많아 붙은 지명이란다.

마을 출신 중 사법고시 패스하고 법조계에 진출한 사람들이 많다 했다.

그중 현재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그 의원.

형님의 친구이자, 동네 형이었다고.


M형과는 유일하게 시사, 정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내게 대뜸 "야, 마미손이 뭐냐?"라고 물어서 한창 웃다 설명해줬다.)

동용산 집하장 탑차 중 유일하게 M형 차 앞유리에 세월호 노란리본 스티커가 붙어있다.


M형은 1992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취업반으로 인천에 대우중공업 하청 협력업체에서 처음 일을 했다고 한다.

19살 당시, 동인천에 친한 누나를 만나러 가서 처음으로 피자를 먹어 봤단다.

(이게 대체 무슨 음식인가 싶어, 처음엔 한 조각도 못 먹었다고) 


1997년 2월 전역을 하고 나와서는 무작정 고향인 군산 대우 자동차 공장에 찾아갔단다.

운이 없게도 형이 군 생활 중에 군산 대우자동차 공장에서 생산직 신입사원을 대거 뽑았다고 한다.

군에서 그 소식을 듣고는 입사 지원을 하지 못 한게 너무 아쉬웠단다. 


차를 좋아하기도 하고, 당시 군산 대우차 공장은 아시아 최고의 자동차 공장으로 불리우며

유명하기도 했고 지역 내에서 좋은 직장으로 다니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공장 정문 앞까지 가서 혹시 사람 뽑는지 물어봤는데 자린 없더랜다.


첫 직장은 우유영업소에서 우유 배달.

얄궂게도 군산 대우자동차 공장에 야식을 납품하는 업체였단다.

처음엔 하루 2~3백 개씩 들어가다 점점 그 수가 줄더니 아예 주문이 멎더란다.

더는 못 다니겠어서 그만뒀고, 얼마 후 IMF 구제금융 선언.


아직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모른다.

다만 우리 집하장에서는 '젊었을 때 아주 세게 ("개같이") 놀았던' 형으로 불리운다.

글쎄, 근데 얘기해보면 해볼수록 늘 열심히 일하면서, 그만큼 열심히 놀면서 건강하게 살았을 것 같다.


등산, 스키를 좋아해서 종종 총각 시절 산 종주했던 이야기, 놀러다녔던 이야기를 해주는데 재밌다.

정말 전국 물 좋고 산 좋다는 어지간한 곳은 다 다녀본 듯한 느낌이다.


9년 전, 애 낳은 이후로는 제대로 된 등산은 해보질 못 하고 있단다. 아쉬워 하는 기색은 없었다.

자동차 리어미러에 아이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 걸려 있다. 이란성 쌍둥이 남매다.

지난 주말엔 오랜만에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잘 다녀오셨느냐 물으며, "애들이 좋아했겠네요"라고 말하니

특유의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로 "아주 환장을 하지~"라고 말한다. 


동용산 20명 넘는 기사 중 담배 피지 않는 드문 사람 중 하나다.

평소 몸관리가 철저하다. 첫 차 하차가 끝나면 바로 단백질 파우더를 물에 섞어 마신다.

다른 기사들 물 마시듯 하는 믹스커피도 일절 마시지 않는다.


10월 언젠가 한 날은 중간 쉬는 시간에 10kg짜리 쌀포대를 어깨에 메고는 혼자 스쿼트에 열중하자,

주변 기사들 모두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저런 기운이 어디서 나나 싶은) 

형 역시 시선을 느끼고는 괜히 멋쩍었는지, 


"자지가 안 서서 그래~ 너희도 나이 먹어봐~ 와이프가 얼마나 구박하는데~"

라고 말해서 모두가 크게 웃었다. 남자들끼리 일하는 곳이라 이런 건 편하고 또 재밌다. 


평소 몸관리 덕분인지 마흔 중후반인데도 몸이 정말 좋다. 

하차 중 더우면 자신있게 상의 탈의하는 기사가 2명이 있는데 그 중 하나다.


동용산 지역 내 3개 팀(전자상가/이태원/한강로)중 전자상가 팀이 그나마 

가장 끈끈한 팀웍이 있는데 아마 M형의 존재감이 크게 한 몫 한다고 본다.


화요일 아침이면 전날 밤 초과된 발송 물량을 하차와 함께 처리해야 한다.

한번은 3개 팀 거의 모든 기사들이 전날 집하해 온 물량을 상차하지 못 했다.

이러면 먼저 싣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는데, 어느 팀부터 먼저 싣느냐 순서를 두고 예민해진다.

그날은 각 팀이 서로 양보 안 하고, 먼저 싣겠다 맞서는 상황이라 여차하면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날 선 분위기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첫차 하차가 끝나자, 그 빈차에 상차 

전날 각자 1톤 탑차에서 못 실은 발송물량을 다음날 아침에서야 실어 보낸다 

기사들은 상/하차를 함께 해야 하는 화요일 오전을 굉장히 힘들어 한다

육체적으로도 고되고, 배송 나가는 시간 자체가 늦어진다



그때 M형이 나섰는데, 대략 이렇게 얘기해서 상황을 종료시켰다.


"지난 주 화요일에 발송 물량 넘쳤을때, 우리(=전자상가 팀)가 양보해서 너희(=이태원,한강로 팀) 먼저 실었잖아.

그때 우리가 너희 물건 짰는 것(=상차)도 도와줬지? 그럼 서로 배려를 해야 할 것 아냐. 

주거니 받거니, 서로 좀 도와주면 되잖아" 


오늘 M형은 내게 본인의 92년부터 97년 12월까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난 M형에게 <국가부도의날>을 추천했다.


M형은 내게 안 그래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했는데, 

IMF 이후로는 더 심해지고 있다고 정말 큰 문제라고 얘기했다. 


특히 고향인 군산은 IMF 때도 끄떡 없었는데, 

최근 현대중공업, GM 군산공장 폐쇄 이후로 군산 경기가 말이 아니라고. 

 

M형의 배송 구역은 용산구 이촌2동이다. 

지금쯤 배송은 다 마치고, 캐리어를 끌고 전자상가 내 거래처를 돌며 열심히 집하 중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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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팀에 사촌동생이 함께 일하고 있다.

동용산 집하장에만 친인척 형제 관계가 셋이나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에 구직과 일자리 관련해 따로 얘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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