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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학기 지역사회연구 학기말 연구계획서]

 

  타이 무슬림(Thai Muslim)의 국가에 대한 소속감

태국 남부지역, 빠타니(Pattani) 주(州)거주 무슬림을 중심으로


 

[초록]

 불교국가로 알려진 태국엔 소수의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타이 무슬림’(Thai Muslim)이라 불리며, 주로 태국 남부 4개주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다. 동남아시아에 이슬람이 전파된 이래, 현재까지 이 지역의 무슬림들은 스스로를 ‘말레이 무슬림’(Malay Muslim)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20세기 초, 근대국가 체제 아래 국경선이 그어졌고 이들은 ‘태국인’으로서의 국민성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과 언어, 복식, 관습 등에 높은 긍지를 가지고 독자적인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 

 본 연구는 문화인류학의 참여관찰방법을 통해 이들 태국 남부 타이 무슬림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관찰함으로써 국경을 근거로 한 물리적 공간과 종교와 문화를 근거로 한 사회문화적 공간의 불일치 현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Ⅰ. 연구 배경과 주제 및 목적

 

 본 연구주제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연구자 개인의 경험에 기인한 바가 크다. 본 연구자는 2012년 두 학기를 휴학하고 2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약 8개월 간(정확히 232일) 동남아시아 6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였다.[각주:1] 평소 자전거 여행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대학 졸업 전 학생 신분으로 온전히 스스로에게 몰입할 수 있는 여행 방법이 자전거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현실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한 학기 동안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여행경비의 수준엔 한계가 있었다. 가능하면 최장기간, 최소비용으로 지속할 수 있는 최적의 여행 방식은 스스로 달려 이동함으로써 교통비를 최소화하고, 이방인이란 핑계로 현지인들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해줄 호의를 부탁하거나 스스로 아무데서나 텐트를 치고 잠을 해결할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이 최선이었다. 무엇보다 저렴한 물가 수준과 자전거 주행을 위한 기후 등 여러 조건들을 감안했을 때 최적의 지역은 동남아시아였다.

 

 8개월 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 이전 피상적인 덩어리로만 여겨졌던 동남아시아의 복잡성과 각 사회의 역동성-또는 갈등적 양상-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한 국가 내에서도 주류사회를 구성하고 정치경제적 자원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특정집단-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경우 화교-의 모습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들은 다양한 소수민족들과 함께 각자의 언어와 종교, 복식과 관습 등의 문화를 유지하며 표면적으로는 조화를 추구하지만, 때때로 기저에 존재하는 반목이 다양한 갈등이 표출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동남아시아의 복잡성(Complexity)으로 가득 찬 풍경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에게 매우 큰 문화적 충격이었으며 동시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연구자는 작년 여행 중 본 연구의 주 연구지역인 빠타니(Pattani)에 직접 가본 경험이 있다. 당시 연구자의 여행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고 태국 북부에서부터 인도차이나 반도 최남단 싱가폴까지 종단한 이후, 남중국해와 평행으로 말레이시아 동부를 경유해 다시 태국을 향해 북(北)으로 달리고 있었다. 여행 동선을 설정하는 단계부터 태국 남부 3개주를 경유할지 여부는 늘 진지한 고민거리였다. 태국 내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태국 내 영자신문 방콕 포스트(Bangkok Post)는 물론, 유수의 서구 여행정보 서적과 전문 사이트들의 대다수가 이구동성으로 태국 남부 3개 무슬림 주로의 여행을 매우 강력하게 삼갈 것을 권했다. 이유는 이 지역 전체 인구 중 무슬림 비율이 압도적이며 태국 중앙정부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무장단체 세력의 반정부 테러활동이 빈번한 일종의 분쟁지역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실제 남부 3개 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본 결과, 당시 연구자가 여행 중인 시점엔 잠시 동안 소강상태였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시내 재래시장과 쇼핑몰 등의 공중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의 폭탄테러는 물론 정부군과의 교전도 빈번했을 정도로 해당 지역의 치안 상태는 위험한 상태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연구자는 작년 8월 6일 말레이시아 측 국경-Rantau Panjang-에서 태국-Sungai Kolok-으로 국경을 넘었다. 기억하건데 국경을 넘은 시간은 대략 오후 1시쯤이었다.


 당시 연구자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 첫 번째 선택은 가장 가까운 기차역-Sungai Kolok역-에서 자전거를 기차에 올리고 수도 방콕까지 한 번에 이동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선택은 기차를 타되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남부 분쟁지역의 핵심도시, 빠타니에 가서 내 두 눈으로 직접 궁금증을 해소하고 상황이 허락하면 최소 하루에서 사흘정도 머무르는 것이었다.[각주:2] 고민 끝에 일단 빠타니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상황을 살펴 본 후 더 머물 것인지, 혹은 방콕으로 올라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기차를 타고 빠타니로 이동했다. 빠타니 역에 도착해보니 기차역부터 완전군장에 실탄을 장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태국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분위기는 매우 삼엄했다. 당시 연구자는 오전 일찍부터 주행을 했는지라 피곤했고, 점심도 채 먹지 못하고 국경을 넘은지라 몹시 허기가 진 상태였기에 일단 역 주변 시장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며 상황을 주시해보기로 결정했다.


 사진 1) 2012년 8월 6일, 오후 2시 경 빠타니(Pattani)역에 하차하여 촬영했던 기차역 풍경


사진 2) 빠타니 기차역 주변의 노점상들. 주로 두리안을 비롯한 각종 과일을 팔고 있었다



   

사진 3) 시장에서 사와, 기차역 플랫폼에서 먹은 점심


사진 4) 빠타니 기차역 플랫폼 - 북부 방콕 방향


  


 안타깝게도 연구자는 기차역에서부터 감지되는 그 삼엄한 분위기에 압도된 나머지 빠타니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할 생각조차 깜박 잊어 버렸다. 결국 근처 시장에서 구입한 점심을 기차역 승강장으로 가져와 대충 먹는 듯 마는 듯 한 후, 방콕 행 가장 빠른 시간표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직까지도 당시 연구자가 조금만 더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했다면, 최소한 현지 사정에 밝은 친구에게 연락은 해본 후, 상황이 허락했다면 더 많은 것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란 깊은 아쉬움이 있다. 만약 그랬다면, 결과적으로 이 연구계획서도 현실의 경험에 근거하여 보다 더 탄탄하게 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과는 별개로 다음의 짧은 글귀들은 당시 연구자가 남긴 여행기록으로 간접적으로 당시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각주:3]

 

 다시 방콕에 돌아왔다. 태국 국경 넘어 Sunggai Kolok에서 기차타고 Pattani가서 점심먹고 다시 기차타고 방콕으로 쐈다. 어제 오후 4:40기차였고 1200km정도거리 20시간정도 걸렸다. 침대칸 표가 없어서 2등석 탔는데 괜찮았다.#fb 

2012.08.07

 

 Pattani를 그냥 지나치긴 아쉬워 기차로 잠시 들러 점심먹고 한 시간 정도 둘러봤다. 기차역 주변만 해도 대부분이 무슬림들이었고 실탄으로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HatYai까지는 기차안에도 무장한 군인들이 돌았다.#fb  

2012.08.07

 

 @Kmini1265 걍 별거 없었구요. 나오면서 도장받고 들어가면서 도장받고.. 얄라, 빠따니까지는 무슬림들이 확실히 많아 보였습니다. 메싸이를 한번 가보고 싶어요.[각주:4]2012.08.08



              사진 5) 빠타니 발 방콕행 기차 안, 무장한 군인의 순찰



사진 6) 방콕행 기차 안에서 피로한 모습의 연구자



사진 7) 빠타니로부터 약 20시간이 걸려 다음 날(8월7일) 오전 방콕

후알람퐁(Hua-Lam-Pong) 기차역에 도착한 직후 촬영한 연구자의 자전거


 

  빠타니에서 기차를 타고 방콕으로 올라오는 도중, 빠타니보다 북쪽에 또 다른 무슬림 주(州)의 수도 얄라(Yala)를 지나쳤다. 시내를 통과하며 천천히 지나가는 기차 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제적으로 몹시 낙후되어 보이는 시내의 모습과 장을 보러 나온 절대 다수의 여성들이 머리에 투둥(Tudung)[각주:5]을 쓰고 있는 풍경을 마지막으로 연구자에게 무슬림에 대한 기억은 한동안 기억 속에 침잠해 있었다.[각주:6] 당시 빠타니에 머무르지 않은 아쉬움, 무엇보다 불교 국가로 알려진 태국에 엄연히 존재하는 종교적 소수집단(Minority)으로서의 타이 무슬림(Thai Muslim)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이후 그들에 대한 강한 지적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연구자는 이번 연구주제를 선택하는데 이러한 개인적 경험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동남아시아 문화권은 크게 대륙부(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와 해양부(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로 양분한다. 대륙부는 주로 중국과 불교문화가, 해양부는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이다.[각주:7] 11세기 경 말라카왕국(1405-1511)을 통해 이슬람이 동남아사회로 유입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시아 이슬람 사회의 중심 국가는 말레이시아다. 특히 연구지역인 태국 남부 지역은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맞댄 지역으로 특히, 빠타니(Pattani)의 경우 이미 11세기 경 말라카 왕국으로 이슬람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이전인 9세기 말 경부터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 성장한 상태였다. 기록된 태국의 역사에서 최초의 무슬림은 14세기 아유타야(Ayuttahaya)왕조 시기에 최초로 등장한다. 당시 무슬림들은 아유타야 왕실의 비호 아래 싸얌(Siam)만에서 말레이 반도를 거쳐 말라카 해협을 경유하는 무역로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지배계층이었다. 특히 태국 남부의 빠타니의 경우 이슬람 왕국 체제 아래 태국 왕실에 조공을 바치는 대가로 독자적인 통치권을 보장받았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태국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상좌 불교(Theravada Buddihism)를 믿는 대표적인 불교국가이다. 불교문화는 태국인의 의식구조 및 생활양식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매우 소수지만, 태국 인구 중 약 3.5%~4%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이들을 흔히 ‘타이 무슬림'(Thai Muslim)이라 한다. 타이 무슬림들은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부 4개 도(都)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는 연구대상지역인 빠타니다. 빠타니를 포함한 남부 4개주 지역은 역사적으로도 장기간 말레이시아 이슬람 문화와 지속적인 교류가 있어 왔기에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말레이 문화와 더 밀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각주:8] 현재 이 지역은 국경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분명 태국에 속하는 지역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부 지역은 종교와 언어, 민족, 문화적으로 말레이 세계에 속해있는 이슬람 지역이다. 이 지역이 불교국가인 태국에 속해 있게 된 것은 과거 수 백 년에 걸친 태국인들의 영토 팽창주의와 1909년 영국과 태국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체결된 말레이 반도 국경조약에 결과라는 것이 역사학계의 중론이다.[각주:9]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은 역사, 문화, 언어 등의 정체성에 있어 태국의 불교도들과 명확히 구별된다. 양 집단 간의 이질감은 결국 그 근본에 서로 다른 종교에 뿌리를 둔다. 이러한 종교적 이질감은 종종 종족적인 문제로까지 표출되었다. 타이 무슬림들이 오랫동안 태국으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적인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분리주의 운동(Separatism movement)을 전개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종교적, 민족적 갈등이 표출되는 현상이다. 태국의 다른 소수민족들과 태국의 중북부에 자리 잡은 무슬림들이 태국 사회에 거의 동화된 것과 달리 이들은 태국에서 태어나 태국인의 국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국사회로 동화되기를 거부한 채 자신들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며 이슬람에 대한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문화인류학적 방법(참여관찰)을 중심으로 태국 남부 지역의 타이 무슬림들이 태국과 말레이시아 두 국가 중 스스로를 어느 국가의 ‘국민’으로 인식하는지 그들의 소속감을 파악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표는 타이 무슬림들이 느끼는 종교적, 문화적 소속감-말레이시아와 더 가까운-과 국가 소속감-법적으로 엄연한 태국 국적-과의 거리감의 정도를 확인해보고 근대 주권국가 사이에 국경으로 구획된 영토로서의 ‘물리적 공간’과 종교와 문화에 근거한 ‘사회문화적 공간’의 불일치 현상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연구대상 및 연구 질문


 이미 앞서 충분히 기술했듯, 본 연구의 연구대상은 태국 남부 무슬림 지역을 대표하는 빠타니 주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이다. 연구를 통해 던지는 질문의 요점은 “타이 무슬림들은 자신의 국적이 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정말로 태국인이라 여기는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소 도식적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떤 형태이건 그 정도에 있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진술 사이 어딘가에서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1) 내 국적은 태국인이지만, 나는 무슬림이다. 

    이슬람을 믿으므로 나는 말레이인이다.

2) 내 국적은 태국인이고, 나는 무슬림이다. 

    이슬람을 믿지만 나는 태국인이다.


Ⅲ. 선행연구 및 이론적 검토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말처럼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자아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영애의 연구에 의하면(남태 말레이 무슬림의 분리주의 운동, 동남아연구, 제4권, 1995) 빠타니를 포함한 얄라, 나라티왓, 싸뚠 4개 타이 무슬림 도에 거주하는 인구 중 약 70%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고 이들 중 대다수가 태국어를 읽거나 쓸 줄을 모르며 또한 말할 줄을 모른다고 한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태국어가 아닌 말레이시아어의 사투리인 「야위」어(Jawi : 말레이시아 표준어와는 또 다른 방언으로 동북부 Klantan 지역의 사투리와 유사하다)를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김영애의 같은 연구에 의하면, 태국 남부 타이 무슬림들은 스스로를 ‘말레이 무슬림’이라 부르며 언어는 물론 풍습, 복장, 음식 등 불교를 믿고 있는 태국인들과 일상생활상의 여러 가지 뚜렷한 차이점이 있고 사회형태 역시 말레이시아 사회와 더 유사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은 이들은 자신들이 타이 무슬림이라 불리는 어휘를 거부하고 스스로 말레이 무슬림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태국의 다른 소수종족의 하나인 화교나 북부 지역의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태국 사회에 거의 동화된 것과는 달리 이들은 태국에서 태어나 태국인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화되기를 거부한 채 자신들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며 이슬람에 대한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차상호의 연구(태국 불교도와 무슬림 간의 사회적 통합 증진 의식, Institute of Asian Studies, Chulalonkorn University, 1982)에 의하면 주거의 형태에 있어서도 타이 무슬림들은 대다수의 경우 무슬림들끼리 부락을 이뤄 살고 있다고 한다. 극히 드물게 태국 불교도와 타이 무슬림들이 한 촌락 안에서 살기도 하지만 보통 그들 간에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또한 지리적 조건 역시 무시할 수 없는데, 차상호는 같은 연구에서 태국 남부 4개도의 총 면적이 12,200㎢이며 주로 평지 및 구릉지대이며 절대적 거리는 물론, 항로나 수로, 육로 등 교통수단을 감안한 상대적 거리 측면에서도 말레이시아와 접촉이 편리한 조건임을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역사적으로 태국 남부 지역에 무슬림들은 태국 중앙정부나 다른 도(道)보다는 말레이시아와 교류가 용이하며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문화적 동질성에 의해 말레이시아로부터 언어 및 여러 관습과 문화가 쉽게 유입되어 왔음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말한다.

 

 이병도(태국의 이슬람과 정부, 1998) 역시 태국 남부 무슬림 지역의 지리적 조건이 모든 면에서 태국보다는 말레이시아와 연속되고 유사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이 지역은 말레이세계의 일부라 할 수 있으며, 이 지역의 무슬림들이 태국인이라는 의식보다는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Arong Suntasat(남부 4개도에 갈등 문제, Bangkok, Pitakpracha)은 타이 무슬림들의 주된 교육기관인 ‘뻐너’(Pondok)[각주:10]가 그들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대해 지적한다. 뻐너에선 이슬람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와 종교적 수행방법, 철학과 역사, 아랍어 등을 배운다. 뻐너에는 ‘또크루’(Tok Guru)라 불리는 이슬람 교사와 ‘우스따즈’(Ustaz)라 불리는 일반 이슬람 교사가 함께 모든 교육을 담당하며 이들은 남부 타이 무슬림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지도자로 대접받는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김영애(남태 말레이 무슬림의 분리주의 운동, 동남아연구, 제4권, 1995)의 경우도 태국 남부 타이 무슬림 사회에서 뻐너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지적한다. 즉, 타이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이슬람식에 교육을 받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체면이 선다는 가치관이 존재하며, 태국 정부가 뻐너를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타이 무슬림 부모들은 자녀들을 뻐너에 보냄으로써 자신들의 종교와 역사, 문화와 정신 그리고 언어적인 특성을 지켜나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들 대대수가 일상생활에서 말레이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태국식 교육기관에 진학할 경우 굳이 어려운 태국어를 배워야 하기에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의 자녀가 태국어를 잘 하게 될 경우 그들이 이슬람의 전통적인 문화와 지식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고 태국화된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한다고 한다. 이러한 타이 무슬림 부모들의 가치관은 많은 무슬림 자녀들을 뻐너 학교에 보내 꾸란과 말레이어에 대한 공부를 더욱 강조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더욱이 타이 무슬림 사회에서는 뻐너 출신의 졸업생을 사회적으로 더 선호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인정해준다고 한다. 김영애는 결과적으로 뻐너 중심의 교육은, 교육을 통해 타이 무슬림들이 종교적, 언어적, 문화적, 정신적, 역사적 특성을 고수하고, 그들 사이의 단결을 유도하여 태국 사회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고 해석한다.

 

 차상호는 남부 타이 무슬림 지역과 태국의 다른 지역과의 소득수준 격차도 이들을 고립, 결집시키는데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남부 지역의 1인당 평균소득은 태국의 다른 지역은 물론 이웃 말레이시아의 평균소득에도 훨씬 못 미친다고 한다. 남부 타이 무슬림들은 대부분 해안가를 따라 작은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으며 보통 어업이나 소규모 고무농장, 행상, 일부가 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반면 주로 외부에서 이주해 온 중국계 태국인과 태국 불교도들은 이 지역에서도 사회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두 집단 간의 종교적이고 인종적인 문제는 타이 무슬림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수준과 이로 인한 경제적 빈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일부 타이 무슬림 지도자들은 남부 지역의 부(富)가 불공평하게 화교와 태국 불교도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들의 자치 혹은 분리가 이 지역에서 소득의 정당한 분배를 성취하는데 필수불가결하다는 주장을 펼친다고 한다.


 김영애는 비교적 최근 연구(태국의 산업화와 교육을 통한 말레이 무슬림 통합정책, 동남아의 지역주의와 종족갈등, 동아시아연구단 총서3,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오명석 편, 2004)에서 태국 남부의 타이 무슬림의 경우 이들이 불교도 태국인과 종족, 언어, 역사, 종교들에서 다른 점이 많지만,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과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1992년 태국 정부 종교국의 통계에 따르면 태국 전국에 걸쳐 2,799개소의 모스크가 있는데, 이 중 2,347개소가 태국의 남부에 그리고 이 중 절반이 넘는 1,476개소가 국경지역 4개도에 있다고 한다.(Siritat 1995, 32) 이 연구에서 특히 유의할 만한 사실은 남부의 타이 무슬림들은 언어소통의 문제가 없는 북부 말레이시아로 일일노동자나 계절적 이민자로 활동함은 물론 혼인 등에 의해 북부 말레이사람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같은 지역에 사는 불교도 태국인과의 관계에서는 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불이익을 감수하며 불편한 관계로 지내거나 아니면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예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타이 무슬림들이 이슬람 종교에 뿌리를 둔 독자적인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들도 적지 않다. 19세기 말, 지금의 태국 남부 4개주가 태국에 편입된 이래 현재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태국 남부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은 꾸준히 지속되었다. 특히 빠타니는 태국 남부 무슬림 분리주의 저항운동의 핵심지였다. 태국 정부는 주로 문화적 동화정책을 통해 이들을 태국 사회로 통합하려 시도했다. 모든 이슬람식 법률을 태국식 법률로 바꾸고, ‘초등교육 의무법’을 제정하여 타이 무슬림의 자녀들도 태국 초등학교에 입학시켜 태국국가, 태국역사, 태국어 교육을 받게 하는 것, 타이 무슬림들의 전통 의상인 치마모양의 싸롱(Sarong)바지의 착용을 금지하고, 짐을 운반할 때마저도 머리에 이는 말레이식을 금하고 태국식으로 어깨에 메는 방법을 규정하는 등 태국 정부는 무슬림들에게서 그들의 습관, 풍습, 언어 및 이슬람을 강제로 분리시키는 동화정책을 취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타이 무슬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과 말레이인의 문화를 말살시키려는 시도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태국 정부에 대한 반감과 더 강력한 저항을 심화시켰다.(이병도) Surin Pitsuwan(Islam and Malay Nationalism : A Case Study of the Malay-Muslim of Southern Thailand, Bangkok, Thammarsart University Press, 1985)에 의하면 타이 무슬림 분리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그룹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며, 그 중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사이에 생긴 ‘빠타니 민족 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of the Pattani, BNPP)와 ‘빠타니 연합해방기구’(Pattani United Liberational Organization, PULO) 두 그룹이 현재까지 주도적인 세력으로, 지속적인 분리주의 운동(Separatism Movement)를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조직들은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국경에 있는 밀림을 근거지로 말레이시아의 무슬림들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리비아를 비롯한 많은 수의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들 국가들은 타이 무슬림의 분리주의 운동을 이슬람 해방운동의 차원에서 돕고 있으며 타이 무슬림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 뿐 만 아니라 장학금과 유학을 알선하여 많은 수의 타이 무슬림을 중동 이슬람 세계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태국 연구로 가장 정통한 학자인 조흥국(태국-불교와 국왕의 나라, 2007)도 남부 4개주의 특수성과 그 중에서도 빠타니의 지닌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말레이계 타이 무슬림들은 빠따니와 얄라, 나라티왓, 싸뚠 4개 주를 자신들의 땅으로 간주하여 “다르 알 이슬람”(Dar al Islam), 즉 “이슬람의 집”으로 부르지만, 자신들의 땅을 강압적으로 태국의 영토로 삼고 자신들을 그동안 정치적, 문화적으로 압박하고 지배해 온 태국의 여타 지역을 “다르 알 하르브”(Dar al Harb), 즉 “전쟁의 집”으로 불러왔다고 한다. 또한 현재까지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분리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PULO(Pattani United Liberational Organization)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빠타니는 태국 남부 무슬림 분리주의 운동의 상징적 지역으로, 말레이계 타이 무슬림들의 반타이(Anti-Thai)운동의 구심점이었다고 한다. 지난 수십 년간 태국 남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분리주의 운동과 테러는 지역적인 차원에서 대부분 빠타니에서 일어났으며, 조직적인 차원에서는 PULO(빠타니 연합해방기구)가 그 중심에 있어왔다고 한다. 요약하면, 빠타니는 태국 남부의 갈등에서 그 핵을 이루고 있으며, 빠타니의 무슬림들이 태국 중앙정부와 태국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태국 남부 갈등의 큰 그림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주장한다.

 

Ⅳ. 연구방법 및 연구 수행 계획

 

1) 태국 남부 빠타니(Pattani)주의 무슬림 촌락과 불교신자 촌락을 교차 방문, 심층인터뷰

 

 빠타니 주에 두 종교별 촌락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다. 일정 수준의 라포(Rapport)가 형성된 후엔 타이 무슬림에겐 “당신은 스스로를 태국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불교도 태국인들에겐 “저들 무슬림들이 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심층 인터뷰를 시작할 것이다.


2) 태국의 불력 기준 새해 축제 쏭끄란(Ssongkran, 양력 4월 15일)에 대한 타이 무슬림들 반응과 참여도 관찰

 

 매년 양력 4월 15일은 태국에 가장 큰 명절인 불력 기준 새해인 쏭끄란(Ssongkran)이다. 쏭끄란은 보통 사흘간(13일~15일) 진행되며 매일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길가에 나와 서로에게 물을 뿌린다. 물을 뿌리는 행위는 이 시기가 태국이 계절상 건기와 무더위의 절정이며, 종교적으로는 새해 아침 제일 먼저 사찰에 있는 부처상을 물로 씻겨주는 의식을 거행하고,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새해 덕담을 해주며 지난 한 해의 묵은 때를 벗으라는 ‘정화’(Purification)의 의미에서 가볍게 물을 튀겨주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각주:11] 이 의식은 현재에 이르러 새해를 축하하는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각주:12] 연구자는 쏭크란 기간 빠타니 시내에서 타이 무슬림들이 불력 기준의 새해 축제에 참여하는지 살펴보고, 불교도 태국인들의 촌락에서는 아마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물 축제에 대해 타이 무슬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터뷰할 예정이다.

 

3) 지역 신문 및 정기 간행물에서 사용되는 언어 분석, 방송·라디오 언어 별 청취율 분석

 

 지역에서 발간되는 각종 정기간행물(지역일간지와 주간지, 생활정보지 등)에서 태국어가 어느 정도나 사용되는지 그 비중을 살펴볼 예정이다. 동시에 일상생활의 공간(식당, 카페 등)에서 사람들이 시청 또는 청취하는 TV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이 주로 어떤 언어인지 조사해보겠다. 또한, 이들이 즐겨듣는 음악이 태국 대중음악인지, 말레이어 계열의 음악인지도 주의 깊게 살펴볼 계획이다.


4) 이슬람력 9월, 라마단 기간의 지역 사회 행사, 야시장 등의 규모 관찰

 

 이슬람력 9월 한 달간은, 무슬림이라면 꼭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종교적 실천 중 하나인 라마단 단식 기간이다. 연구자는 일출 후 일몰 전까지 빠타니 시내에 얼마나 많은 음식점이 영업을 하는지 관찰하고 일몰 후 열리는 라마단 바자(야시장)의 규모와 분위기, 저녁 기도회의 규모 등을 직접 살펴볼 예정이다.


5) 연구 지역 내 ‘뻐너’(Pondok, 이슬람 교육기관)와 의무교육기관(태국 정부 설립) 진학률 비교, 양 교육기관의 교과서, 교육 내용, 학제 비교 분석

 

 입수 가능한 자료가 있다면, 비인가 이슬람 교육기관인 뻐너와 태국 정부가 공인하는 초등학교 간의 진학률을 비교할 계획이다. 또한 뻐너에 재학 중인 무슬림 아이와 그 부모에 접촉하여 비인가 교육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공립 초등학교가 아닌 뻐너에 보냈는지 인터뷰하고,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만족도를 물어볼 계획이다.


6) 종교 집단 별 내혼/외혼 비율 조사, 젊은이들에 대한 향후 결혼 의사 질문

 

 기혼 무슬림 부부에 대해서는 출신지를 물어 어느 한 쪽에 말레이시아 출신이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할 예정이다. 아직 미혼인 젊은 무슬림들에겐 만약 말레시아 출신과 불교도 태국인 중 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더 선호하는지를 설문조사할 계획이다.

 

7) 진학, 취업 등으로 인한 인구 유출입 기록 조사(4개 주 밖의 태국/말레이시아)

 

 신뢰할 만한 인구 유출입 통계를 입수할 수 있을시 참고할 예정이다. 대학 진학, 취업을 앞둔 젊은 무슬림들에게 향후 고향을 떠난다면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고 태국 내륙으로 가는 것과 이슬람 문화권인 말레이시아(혹은 인도네시아)로 가는 것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하는지 설문조사할 계획이다.

 

 

Ⅴ. 연구의 의의

 

 태국은 전 세계적 관광대국으로 작년 기준, 117만 여명의 한국인이 태국을 찾았고, 한국을 찾은 태국인 관광객도 해가 갈수록 늘어나, 같은 기간 37만 여명이 태국인이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각주:13] 태국은 최근 전 세계를 무대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한류(Korean-Wave)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기를 얻었던 국가이며 한-태 양 정부는 이주노동에 관한 양해협정(MOU)을 체결하고, 태국이 매년 적지 않은 수의 이주노동자를 한국으로 공급하는 이주노동송출-수입 관계에 있는 국가이다. 이와 같이 이미 태국은 한국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태국은 저렴하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아주 쉽게 일탈도 가능한 만만한 동남아시아 여행국가로만 인식되고 있다.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며, 특히 불교국가로만 알려진 태국에 적지 않은 무슬림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나름대로 독립적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각주:14]


 본 연구는 태국 내 종교적 소수자(Minority)인 남부 타이 무슬림을 연구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태국에서 가장 차별받고 천대받는 소수집단 중 하나이다.[각주:15] 본 연구는 태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집단 간 갈등을 통해 태국 사회 ‘일반’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최근 국내 방문이 증가추세에 있는 동남아시아 출신 무슬림에 대한 이해에도 간접적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각주:16] 아직 한국인들의 대다수는 동남아시아에 무슬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사회학적 의의와 문화인류학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본 연구는 태국 남부 타이 무슬림이라는 사회적 소수집단을 그 대상으로 한다. 사회학에서는 이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종교[각주:17]와, 집단[각주:18], 사회적 배제[각주:19], 정체성[각주:20]등의 요인들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체계적인 분석틀이 갖춰져 있다. 본 연구주제는 사회학적 수준에서 다양한 요인이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에, 주제 자체의 사회학적 연구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연구자의 지적 배경이 사회학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기본적으로 본 연구의 방법론은 철저히 문화인류학의 도구들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서두에 연구목적에서도 밝혔듯, 본 연구는 태국 남부 지역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타이 무슬림들이 인지하는 객관적 조건-태국인이라는 국적-과 주관적 소속감-말레이계 무슬림-간의 자아인식상의 거리와 근대 국가 체제가 그어놓은 국경에 의해 구분되어진 물리적 공간과 여전히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성, 강화해나가는 사회문화적 공간의 괴리 현상을 참여관찰이란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고찰한다는데 더 큰 연구의 의미가 있다.


Ⅶ. 참고자료 및 선행연구 목록

 

「문화인류학 현지조사방법」, 줄리아 크레인·마이클 앙그로시노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동남아학 총서9,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남태 말레이무슬림의 분리주의 운동-변화와 연속」김영애(한국외대 태국어과 교수)

「태국의 이슬람과 정부」이병도(한국외대 태국어과 강사)

「이란 도시 젊은이들의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 : 국가의 감정 통제와 개인들의 자아 구성」 구기연, 서울대 인류학과 중 초반 자아정체성 파트

「동남아의 지역주의와 종족갈등」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오명석 편

「동남아의 종교와 국가」동남아학 총서7,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이병도 외

「동남아의 사회와 문화」동남아지역연구회, 김민정 외

「남태 말레이 무슬림의 분리주의 운동」동남아연구, 제4권, 1995 김영애

「태국 불교도와 무슬림 간의 사회적 통합 증진 의식」Institute of Asian Studies, Chulalonkorn University, 1982 차상호

「남부 4개도에 갈등 문제」 Bangkok, Pitakpracha, Arong Suntasat

「Islam and Malay Nationalism : A Case Study of the Malay-Muslim of Sou Thailand」 Bangkok, Thammarsart University Press, 1985, Surin Pitsuwan

「태국-불교와 국왕의 나라」소나무, 2007, 조흥국

 

  1. 여행 동선은 다음과 같다. (한글 표기) 태국(방콕-치앙마이 포함 북부 3개주-방콕-중부 지방-꼬팡안 섬-남부 국경도시 핫야이)-말레이지아(쿠알라 페를리스-랑카위 섬-페낭 섬-버터 워스-말라카-쿠알라룸푸르-조호르 바흐)-싱가폴-말레이지아(조호르 바흐-코타 팅기-메르싱-쿠안탄-쿠알라 트렝가누-코타바루-란타우 판장)-태국(성가이 콜록-빠타니-얄라-핫야이-방콕-아란야 쁘라텟)-캄보디아(뽀이 펫-씨엠 립-프놈펜-깜뿡 스프-시하누크빌-깜뽓-껩)-베트남(하티엔-뢋야-빈롱-미터우-호치민)-필리핀(마닐라-앙헬레스-보라카이-마닐라)-태국(방콕)-한국 귀국 * 여행 마지막 국가인 필리핀의 경우, 베트남 호치민에 자전거를 두고 다녀옴 [본문으로]
  2. 당시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빠타니 출신으로 내 친구와 함께 말레이시아 북부 국립대학(Utara university)를 다니고 있던 루피(Rutfee)라는 태국 친구를 알고 있었다. 이미 나는 그와 태국에서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기 전 태국 남부 국경도시 핫야이(Hot-yai)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당시 나는 그에게 싱가폴까지 내려갔다 다시 방콕으로 올라가는 도중 빠타니에 가게 될 경우 연락을 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빠타니에 오게 될 경우 꼭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빠타니에 올 경우 자신의 부모님 집에서 묵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당시 그는(심지어 본인은 무슬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태국 사회에서 남부 3개주 출신이 부당하게 받는 차별에 대해 울분 섞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재 그는 학부를 마치고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수료중이다. 기억하건데, 당시 그는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빠타니 출신이라는 태국 사회에서의 일종의 낙인(Stigma)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그가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전공으로 정치학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나는 그의 선택이 여러 맥락에 있어 아주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본문으로]
  3. 당시 연구자는 여행 중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짧은 단문형태의 기록은 SNS 매체인 Twitter를 이용했다. 당시 여행 중의 트윗들을 백업해 본 결과, 빠타니에서 방콕으로 돌아온 이후(8월7일) 무선인터넷(WIFI)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빠타니와 관련된 3개의 트윗을 남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4. 트위터 상에서 내게 말레이시아-태국 간 국경 출입국에 대해 물어본 이(Kmini1265)가 있었다. 그(혹은 그녀)는 내게 육로 국경 출입국에 대한 질문과 함께 태국 남부에 무슬림이 정말 그렇게 많냐고 물어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문으로]
  5.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하는 헤접(Hijab)을 칭하는 용어 [본문으로]
  6. 물론 이후 캄보디아 남부 깜폿(Kampot)지역에서 소수의 캄보디아 무슬림 촌락을 목격했다. [본문으로]
  7. 물론 대륙부 동남아시아인 미얀마의 카친족(Kachin)은 크리스쳔이 대다수이며 베트남 남부에도 일부 카톨릭이 신도들이 존재한다. 해양부 동남아시아인 필리핀의 경우에도 남부 민다나오 섬을 제외하곤 카톨릭의 비율이 우세하다. 이러한 현상은 동남아시아 전역이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의해 장기간 점령당한 역사적 배경에 연유한다. [본문으로]
  8. 4개주 중 가장 태국 남부에서도 서쪽, 안다만 해(海 )에 인접한 주인 싸뚠(Satun)의 경우 다수의 선행연구에서 나머지 3개 주(빠타니, 얄라, 나라티왓)와 비교했을 때 상당 수준의 태국화가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9. <20세기 동남아시아의 역사> 2004, 심산, 클라이브 크리스티 [본문으로]
  10. 태국어로 ‘뻐너’는 본래 ‘초가집’이란 뜻이다. 태국 남부 무슬림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계승되어 내려오는 타이 무슬림을 교육시키는 학교를 의미한다. 과거 한국의 ‘서당’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11. <태국-불교와 국왕의 나라> 2007, 소나무, 조흥국 [본문으로]
  12. 연구자는 작년 4월 15일 쏭크란 축제를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보냈다. 태국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의 수도로 불리우며, 대도시화되어 전통이 많이 소멸한 방콕에 비해 본래의 성대한 쏭크란 축제를 치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적으로 방콕의 경우 쏭크란 물축제를 관(官)이 정하는 시내 몇 곳의 장소에서 단 하루 동안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보여주기 식(Ceremony) 에 그치지만, 치앙마이의 경우 도시 전체가 쏭크란 기간 사흘 내내 성대한 물 축제를 벌인다. [본문으로]
  13. [아세안 속의 글로벌 코리안]정병희 한국관광공사 태국 지사장 인터뷰], 주간무역, 2013년 5월 27일 [본문으로]
  14. 연구자는 작년 총 8개월 간의 여행 기간 중 태국에서 가장 긴 3개월을 보냈다. 여행 중에 현지 교민, 장기 여행자, 지금까지 태국 여행 경험이 매우 많다고 주장하는 여행자(자칭 태국전문가) 등 꽤 다양한 한국인들을 만났으나 그 어느 누구도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을 가진 이를 만나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한국보다 경제적 후진국이라는 전제를 우선하고 일단 낮춰 보는 것은 동일하며, 다분히 인상 비평적이고 ‘어디에서 들었다’식의 얄팍한 지식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삶의 터전이건 잠시 쉬고 놀다 가는 여행의 장소이건, 거의 절대다수에게서 태국은 ‘싸고 편하게 놀다갈 수 있는 나라’ 이상의 인식 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현지에 직업적 가이드들마저도 크게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본문으로]
  15. 태국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내부 집단은 크게 셋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연구대상인 남부 타이 무슬림, 북부 고산지대의 다양한 소수민족들, 동북부 이싼 지역 출신이 태국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세 집단이다. [본문으로]
  16. 최근 시내 중심지(명동, 동대문, 인사동, 광화문 일대)를 나가보면 동남아시아 무슬림 국가(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여행을 오는 여행객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17. 현대사회와 종교 393p - 현대사회학, 앤서니 기든스 [본문으로]
  18. 사회집단과 조직 - 사회학의 이해, 홍두승 외 2인 [본문으로]
  19. 사회적 배제 295p - 현대사회학, 앤서니 기든스 [본문으로]
  20. <현대성과 자아정체성> 2001, 새물결, 앤서니 기든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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