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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하장 가는 아침 하늘이 심상찮았다.

회색빛 구름이 잔뜩, 공기도 유난히 스산했다.

상암동을 빠져 나갈 때까지 투두둑 비가 왔다.

다행히 수색 중앙로에 들어서자 비는 그쳤다. 


어제 저녁엔 일부러 햄버거 세트를 먹고 잤다.

되도록 늦은 저녁에는 뭘 많이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월 밤과 수 or 목 밤에는 일부러 든든히 먹고 배를 채운 후에 잔다.


(먹고 자면 숙면에는 확실히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먹고 잔 다음날 수면 밴드 기록을 확인해 보면 얕은 잠 시간이 더 길다)


화 아침엔 물량이 가장 많은 날이고,

수, 목 쯤 되면 체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해서 힘들기 때문에 일부러 먹고 잔다.

주로 고기나 치킨, 햄버거. 고기가 있는 고칼로리 음식들로.


역시 화요일.

첫 차는 5t 용달차.

즉, 오늘은 3대라는 얘기.

5t 하나, 10t 두개.


▲ 오늘의 첫 차. 5t 트럭. 소장들은 '용차(용달차 줄임말)'로 부른다.

오늘 이 용차에서 1200개 물량이 나왔다. 보통 빠르면 30분, 늦어도 40분안에 다 내린다. 



10t 차가 두 대나 남아 있는데,

5t 첫 차에서 힘 빼면 안 되기 때문에 설렁설렁 했다.

그래도 한 40분 만에 다 내렸다.


5t 용달차 기사가 우리 집하장은 처음인지 여기엔 자판기 없냐고 내게 물었다.

자판기 없다, 소장들 다 각자 믹스 커피 사서 정수기에서 타 마신다, 고 답했다.

그러자 한 어린 소장이 레일 내려오자마자 첫 자리에 있는 기차화통 목소리 형에게

"형, 기사님 커피 한 잔만 드려"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소장은 오늘 작업이 끝날때까지 기차화통 형에게 욕을 먹었다.

"또라이 새끼, 내가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내 커피를 줘"

"진짜 아무리 생각해봐도 또라이 새끼네, 모르는 사람한테 커피를 왜 주냐고"


안면 없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다.

인심 같은거 1%도 없다.


"그러게요, 전 저 기사님이 종종 오는 분인줄 알았네요"

한 마디 거들자, 기차화통형이 또 뭐라고 욕을 한창 하더니,

"야 너나 한잔 타먹어라" 하면서 믹스 커피 한 봉지와 종이컵을 내민다.

솔직히 좀 놀랐다. 응? 왜 이 시점에 내게 주지?


"저 기사한테 줄 거 저한테 주는거 아녜요ㅎㅎ?"

"아 됐고 그냥 너나 한 잔 타 마셔"



▲ 기차화통형님이 준 믹스 커피. 마지막 차 내리기 전에 쉬면서 마시는 중.

이때까진 비가 오지 않았다. 하차 중간 휴식 중 믹스커피는 카페인,설탕 힘으로 버티는데 힘이 된다. 

소수의 비흡연자 소장들은 제외하고 대다수 흡연자 소장들은 믹스커피를 마실 때면 어김없이 담배를 같이 핀다.



두번 째 차에 같이 올랐던 내 또래 소장은 오른지 한 10분도 되지 않아 내려갔다.

그가 헐고 있던 쪽에서 큰 박스 짐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그의 허리와 등을 쳤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다행히 어딜 삐었다거나, 타박상을 크게 입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많이 당황하고 놀란 눈치였다.

다친데는 없다고 하며 올라와서 하차를 이어하다, 왼쪽 손목을 삐끗했다.

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당황하지 않았다면 아마 입지 않았을거다.

도저히 손목 때문에 더는 작업을 할 수 없는 눈치기에, 

친한 다른 형과 교체 하고 다음에 올라오라고 얘기하자 내려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찔한 순간을 목격한다.

목격은 물론 나 스스로도 겪는다. 쏟아지는 박스가 머리를 때리거나,

같이 하차하던 파트너가 내리던 박스에 팔을 맞거나, 짐을 바닥 레일에 던지다

같이 따라가던 손가락이 접질리듯 큰 충격을 받거나 빨렛트 판을 잘못 밟아 발목을 삐끗한뻔 한다거나.

최악은 오늘처럼 쏟아지는 짐에 차 밑으로 떨어지거나, 아예 깔리거나 하는 거다.

정말 늘 긴장해야 한다. 하루 4만원 벌겠다고 힘 쓰다 병신될 수 있다. 


세 번째 차에서는 유난히도 농수산물이 많았다.

생물이 아이스박스가 터지고, 생선 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여튼 역했다.

아이스박스는 하단에 깔려 있을 경우, 재수없으면 이미 다 박살나 있다.

이런 경우, 내용물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지 않은 이상 소장들이 어떻게든 

형태를 유지시켜(박스테이프질을 한다든지) 배송을 하는 듯 했다. 다만 배송이 엄청 번거로워 질 뿐.


쓰레빠형이 스캐너로 올라왔는데, 터진 짐을 보면서 말했다.

"나도 처음엔 저런 거(포장 파손된 짐) 보고 '내 짐만 아니면 돼'하는 사람들 보고 진짜 야비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도 그래"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결국 수신지가 정해져 있고, 각 담당 구역에 따라 배송을 해야 함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친해도 선의로 도와주려 한다 해도 담당 기사 개인이 오롯이 배송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종종 하차하는 소장들은 짐을 내리다 터진 짐이 나오면 뒤를 향해 큰 소리로 놀리며 예고해준다.

"OO형, 형 구역 OO짐 있는데 터졌어~ 좆됐어~"


다행히 큰 부상도, 체력 부침없이 차는 다 내렸다.

그런데 세 번째 차를 내리던 중반부터 실내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짐을 다 내리고 차에서 내리자 비바람에 공기가 한결 더 차가워졌다.

오류코드 봉고차에 짐을 다 내리고도 비가 그치길 30분 정도 기다렸다. 


일은 다 끝났는데, 집에는 가야 하는데, 비는 무지하게 내리는 그래서 너무 난감한 상황. 그 와중에 빗소리는 좋더라. 오랜만이라.


다행히 비는 그쳤다.

친구가 오토바이 시트에 우비 상하의가 있다고 꼭 입고 가라고 했다.

비는 그쳤지만 오토바이 타면 온몸에 빗물 다 튀긴다고.

입었는데 영락없는 비오는 날 오토바이 택배 또는 배달부 모습.

그래도 덕분에 무사히 잘 왔다.


오늘도 무탈히 일 잘 마쳐서 다행이다.

이번 주부터는 토요일까지 일을 한다.

한 주 아무 사고, 지각, 물량 폭탄없이 지나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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