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순하게 살고 싶었다 - 이기철
작고 순하게 살고 싶었다 이기철 나는 본래 마른 풀밭의 염소거나염소에 발에 밟힌 강아지풀처럼작고 순하게 살고 싶었다겨울이 가고 일찍 봄이 찾아와도햇빛이 눈부신 백양나무처럼흰 몸으로 살고 싶었다 나는 동풍에 대해서는 연약했으나삭풍에 대해서는 완강했다거리와 건물을 낡고 학교는 늙어버렸다신문과 뉴스들은 오만하고관습들은 너무 오래되었다나는 종이에 말없음은 경건했지만책들의 강변에는 무릅 꿇지 않았다세상을 향해 말하기보다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길을 택해왔다 누가 스무살의 나이로 버드나무보다 푸르겠느냐나는 어제 걸어온 길을 걷지 않고아직 미지로만 남은 가지 않은 길을 택해신발 끈을 묶는다 모르는 길들이 우리의 생을 끌고 간다어제는 언제나 낙후하고 내일은 미지인 채또 저 길을 가야 한다걸어가는 날까지만 나는 살아 있는..
~2013
2012. 12. 2.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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